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답하라 1988/배경해설 및 고증오류 (문단 편집) === 12화 === * 김선영이 장을 보러 가는 시장은 1980년대 분위기보다 최소 2000년대 중후반스러운 분위기가 나는데, 간판 폰트가 요즘 흔히 쓰이는 폰트이기 때문이다. * 개학이라서 학교 가는 날에 아침 6시 반이라고 하지만, 겨울이라서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어두워야 하는데 너무 밝다. 2월의 평균 일출시간은 7시 15분, 3월이라고 해도 6시 35분이므로 6시 반은 그렇게 밝지 않다. 하물며 덕선이네 집은 반지하인데.... 더불어 최택의 왕위전 1차전이 벌어질 때 성선우, 김정환, 류동룡이 저녁 [[도시락]]을 먹으면서 10시간째 대국 중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침 9시에 시작해서 10시간이면 저녁 7시임에도 날씨가 너무 밝다. 창문에서 햇빛 드는 게 보일 정도다. 또한, 저녁 7시는 저녁식사 시작 시간으로는 너무 늦다. '''물론, [[한국 드라마]] 촬영 여건상 매우 촉박하게 촬영할 시점이라서 이런 것들을 모두 따져가면서 촬영하기는 매우 힘들겠지만....''' --고만해 이 미친놈들아!!-- 이 부분을 감안했는지, 성덕선이 김정환을 따라 첫차를 타고 학교 가는 장면, 야자를 빠지고 성선우가 집에 가는 장면 등은 햇빛 없이 어둡다. * 성선우가 자기 먹을 소화제와 엄마 선영에게 줄 감기약을 사는데, 극중에서처럼 병원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바로 약을 '조제해서' 사 먹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의약분업은 2000년 8월 1일부터 실시되었다. * 또오치 경양식집이 있는 곳이 [[쌍문역]] 삼익상가인데, 이 상가는 실제로 쌍문역 근처에는 없고 방학동 방향으로 많이 걸어가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쌍문동 삼익아파트에 있는 상가이다.[* 당시 아파트는 1988년 12월 입주 시작.] 그리고 당시 쌍문역 인근은 1980년대 후반까지 그렇게 많이 번화하지 않았다. * 성선우가 성보라에게 "벌써 [[중등교원임용경쟁시험|임용]] 준비하느냐"고 묻는데, 1990년까지 [[국립대]] [[사범대학]] 졸업자는 자동으로 임용이 되었고, 비사범계나 사립 사범대 졸업자에 한해서 순위고사를 치렀다. 성보라는 자동 임용 막차 타는 세대. 현행 중등 임용은 1990년 10월 국립 사범대 졸업자에 대한 우선 채용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1991년부터 실시된 것이다. 오히려 당시에는 4년간 의무적으로 [[교사]]를 하지 않으면 중등교원자격증을 반납해야 했었다. 단, 1986년 12월에 문교부에서 시위전력이 있는 학생 혹은 임용 대기자는 성행불량자로 분류하여 임용하지 않기로 한 바 있으므로, 성보라가 "나는 서울시경 블랙리스트라 임용이 안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오류가 아니다. * 위의 임용문제에 대해 조금 다른 의견을 내보자면, 그 당시 최초로 임용고사 이슈가 나온 것은 88년 5월. 이후 국립대 사범대 교수들이 성명서를 내고 사범대생들이 집단 자퇴를 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임용고사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졸업정원제로 인한 대학정원 증가로 임용적체가 심해서 국립사범대 출신들도 비인기 과목의 경우[* 특히 [[독일어]], [[프랑스어]] 등 유럽계 제2외국어. 오죽하면 임용대상자들을 6개월간 동양계 제2외국어 교육을 시켜서 해당과목으로 발령을 내려 했을까? 물론, 이는 비사범계나 [[사립대]] 사범대 [[일문과]], [[중문과]] 학생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많이 기다려야 임용이 가능했다.[* 이렇게 임용적체가 되어 발령이 나지 못한 1980년대 학번 인원들은 자동임용이 위헌판결을 받게 되자, 자동으로 임용을 할 수 없어진 관계로 임용시험을 봐야 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3저호황에 의해 취업이 매우 잘 되던 시기라서, 귀찮은 임용시험보다는 대기업 입사를 택했다. ~~그러다가 IMF 이후 퇴직하고 안정적인 교사를 다시 희망해서 자동임용 해달라고 떼써서 결국 2000년대 후반에 자동임용된다. 이른바 '''미발추'''.~~] * 물론, 성보라는 어차피 메이저 과목인 [[수학]] 전공이라 딱히 해당 없다. 따라서 당시 극중 상황에서 성보라에 관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모두 알고 있는 성선우가 임용고사가 생긴다는 카더라를 알고 있었다면 저런 대사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아는 성선우가 정작 성보라가 자동 임용 세대에 속한다는 걸 모르는 것은 모순에 가깝기 때문에 그냥 작가가 헷갈렸다고 보는 게 가장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 또한 성선우가 말한 '임용준비'를 임용시험이 아니라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냐는 지적도 있었으나, 다음 씬에서 나온 성선우의 대사 "회계사 시험 보게요? 임용 안 보고?"로 봐서는 성선우가 말한 임용은 임용시험을 의미하는 것이 확실하므로 고증오류라 할 수 있다. * 성보라가 "나는 '''서울특별시경찰국''' 블랙리스트라 임용이 안 될 거야"라고 얘기한다. 당시의 경찰조직은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 출범 이전이라 내무부 조직인 치안본부였고, 그 아래에 각 시도경찰국이 있었다(예: 서울의 경우 서울특별시경찰국으로 지금의 [[서울지방경찰청|서울지방경찰청]]에 해당함). 경찰청이라는 내무부 휘하의 외청으로 승격된 것은 1991년이다. * 4화 때에도 언급된 사실이지만 해당버스(BS106 하이파워) 유리창이 좌석버스식이고 에어컨이 달려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쇠창틀 자체가 구하기 힘든 차라(...).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그렇다고 공항 지상조업차량 빼올 수도 없는 거고(...) ~~그리고 어차피 버덕 외엔 아무도 신경 안 쓴다(...)~~ * 김정환이 자주 언급하는 [[다이하드]] 1편의 비디오테이프는 실제로는 1990년에 출시되었다. 1988년 추석특선으로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이듬해인 1989년 설연휴까지 장기 상영하여 대박을 기록했기 때문에 극장에서 본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전 에피소드에서 "비디오 나왔던데"라고 대사를 쳤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고증오류에 속한다. 그러나 [[복돌이]] 항목에서도 나오듯 그 당시에는 해적판 비디오테이프도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비디오 나왔던데"가 지역적 특색과 맞물려[* 극장에 갈 시간과 돈 대신 해적판 비디오를 빌려서 보는 게 경제적인] 오히려 고증에 잘 맞는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1985년]]에 개봉되었으나 국내에 [[1987년]]에서야 개봉된 록키 4, 백 투더 퓨쳐 등이 극장 흥행에서 참패한 이유 또한 미국개봉-국내개봉 시차 동안 해적판 비디오를 통해 볼만한 사람은 다 봐서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외에서 복제판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국내 극장에서 캠코더로 찍은 소위 '캠판'이 나돌기도 했다.][* 백 투더 퓨처는 흥행에 실패하지 않았다. 개봉관 기준 34만명을 끌어들여 87년 국내 영화 흥행순위 4위를 기록했다.물론 개봉 당시 미국의 인기를 감안하면 높다고 볼 수 없지만..] * 최택의 패배 뉴스기사에서도 약간의 오류가 있다. 보통 보도지침은 승자 위주로 쓰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의 기사와 붙는 것이 아닌 이상 최택의 패배가 중심인 보도가 나갈 수가 없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승자를 위주로 보도를 한 다음, '''반면 최택 6단은~'''이라고 나가는 것이 정확한 보도다.[* 다만 질것 같지 않던 상황에서 이변이 일어난 경기라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패배가 나왔을때는 패배 위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가령 [[미네이랑의 비극|브라질 충격의 1:7 패배라던가...]]] ~~주인공 보정이니 이해하자~~ ~~그런데 가끔 이렇게 보도하는 곳이 있긴 있다. [[조선일보]]라든가 조선일보라든가 조선일보라든가.(...).~~[* 실제로 여기서는 대종상 최다수상작을 헤드라인으로 뽑지 않고 "[[친구]], 대종상 전 부문 탈락"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팔리는 헤드라인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듯.] 물론 국가대항전 스포츠의 경우 얄짤 없이 자국중심 보도가 나가는 건 만국공통. * ~~성선우가 개정된 한글 맞춤법 사용에 관한 TV 뉴스를 보며 성진주의 한글 맞춤법을 ‘-읍니다’에서 ‘-습니다’로 고쳐주는 장면이 있는데, ‘-습니다’의 개정은 이미 1988년 1월 개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만, 개정 이후 홍보를 위한 방송이라고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 해당 뉴스 내용은 자세히 들어보면 알겠지만, 1989년 3월부터 개정된 맞춤법이 시행된다는 내용이다. 원래 법규나 공공규범이 개정될 때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홍보 등을 하는 유예 기간을 두고, 그 기간이 끝나면 정식 시행한다. ~~학교에선 1988년부터 ‘-습니다’로 가르치긴 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